수필 시인 박진숙 (Park Jin Suk )/추억의 사진 한 장

추억의 사진 한 장/수필 시인 박진숙 (Park Jin Suk )

입력시간 : 2019-05-17 00:42:39 , 최종수정 : 2019-05-17 00:42:39, 푸른문학신문 기자



어릴 적 국민학교 1학년 때 소풍가서 옆집 순희 언니와 필자, 울 언니, 셋이서 사진사에게 촬영한 추억의 빛바랜 사진이다. 60~70년대 시골 형편이 다들 어렵다는 보릿고개를 지났는데도 힘들게 살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은 시골치곤 아버지가 귀한 3대 독자 엇배기 양반 출신이라서 머슴을 3명씩이나 두고 논밭농사를 지었으니 밥술은 먹고사는 집이었다.그런데 옆집은 아주머니가 재봉기술이 좋아 한복, 양장, 맞춤옷과 아이들 옷  원피스를 특히 예쁘게 만드셔서 농사보다는 양장점으로 통했다. 

그 집엔 늘 손님으로 붐볐고 동네에선 부잣집이라고 불렀고, 순희 언니와 그집 얘들은 그 옛날 월남방망이 사탕을 늘 물고 다녔고, 순희 언니는 예쁜 원피스만 입고 다녀 늘 부러운 대상이었다. 엄마와 아주머니는 아주 친한 사이라 가끔 우리집 딸들 남은천으로 원피스를 공짜로 만들어 입혀 주시곤 했다. 두 집 어른 아이들은 허물없이 오가며 두터운 정을 쌓으며 잘 지내는 이웃이었다.  


그러던 중 내가 국민학교 3학년 때 시골 5일 장날, 아주머니와 엄마는 버스를 타고 장터로 가셨다. 그런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  사람을 콩나물 시루처럼 태운 버스가 언덕에서 구르는 바람에 아주머니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하늘나라 가시고, 엄마는 크게 다치셔서 꽤 여러 달 병원신세를 지셨다. 상여 나가는 날 어린 나이에 동네 사람들과 펑펑 울던 생각이 난다

아주머니가 가셔서 슬프기도 했지만, 순희 언니네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에 감정이 더 공감된 듯 했다. 그날 이후 옆집 재봉틀은 주인을 잃어 작동소리가 멈췄고, 아주머니의 죽음의 부재로 순희 언니는 서울 식모살이로, 오빠 둘은 머슴으로 팔려가는 한가정의 불행이 시작됐다. 

아저씨와 어린 아들 두 명이 남아 끼니 거르는 일에 익숙해지고이웃들의 밥과 반찬을 조달해주고 도왔지만, 그들이 배곯지 않고 살기에는 역부족 비참한 빈곤생활이 시작됐다. 끝없는 베풂에도 허기진 사랑은 채워지지 않았다

순희 언니와 뒷동산에 올라 찔레 꺾어 먹으며, 아카시아 잎을 훑고 줄기로 머리카락 돌돌 말아 파마머리처럼 고불고불 모양 만들고, 산열매 멍게 따서 실에 꿰어 목거리 만들고사기그릇 조각 동글게 깨서, 소꼽놀이하고 고무줄놀이 끝없는 추억이 쌓여 있는데 

소녀가 되어 만난 순희 언니는, 넘 일찍 인생 고난 길이 시작 돼 국민학교 5학년 중퇴 학력과, 낯선 타향 식모살이로 마음이 자라기 전 짓눌려 핏기없는 얼굴에 웃음마저 잃고매가리 없는 사람처럼 멍하니 가끔 피식 슬픈 미소만 보였다. 부모님 곁에서 학교만 다니는 나는 괜스레 미안해 했고, 서로 목까지 차 올라오는 말들을 다시 삼키며 아껴야 했다. 그 뒤 허물없이 얘기하고 만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웠고 혹 상처받을까 조심스러워하며 서먹한 이방인이 되었다. 

사진을 볼 때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 뒷날에 닥쳐올 불행과 아픔을 모른체 행복 했었는데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을까? 마법이라도 걸수만 있다면 신께 기도해서, 아주머니만 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도 하며 짧았던 함께한 어린 시절 이 사진을 볼 때면 먹먹해지고 맘 아려지고 슬퍼진다. 어린 시절의 순희 언니의 동심을 잃어버려서 아리고, 좋은 이웃을 잃어서 아프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그 부잣집 순희 언니 집이 아직도 폐가로 그대로 있다. 동물 농장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안에는 아주머니가 재봉틀 앞에 앉아 계시고순희 언니와 오빠들이 마당에서 뛰노는, 한 폭의 추억풍경이 내 기억 속에 세월이 멈춘 채 그려진다

40년이 지났는데도 마음은 여전히 아리고 아프다. 가난했지만 마음을 나눈 이웃 순희 언니네 참 행복했었는데 중년이 된 지금 만나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허심탄회 이야기 나눠 보고 싶다. 지금은 서울에서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가끔씩 온다는데 만나지는 못했다.

추억이 잠자는 시골을 모두 젊은 시절 떠나와 연락도 추억도 끊어져 잠자고 있다. 그 시절 참 좋았는데, 참 행복했었는데 

 저 빛바랜 추억사진을 보면서 오늘도 잠시 추억 속에 들어가 행복한 미소 짓다가 눈물 훔친다순희 언니야 보고 싶다

아파하지 말고 이젠 행복해라 언니야.


[푸른문학신문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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