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인 이은별 (Lee Eun Byeol)/좋은아침(일출봉에서 마라도까지)

수필 좋은아침(일출봉에서 마라도까지)시인 이은별 (Lee Eun Byeol)

입력시간 : 2019-05-10 11:06:48 , 최종수정 : 2019-05-10 11:18:39, 푸른문학신문 기자


여행 날짜를 받아 놓고 달뜨는 기분은 소녀 적이나 요즘이나 매한가지인가. 아니, 그 설렘이 어른이 되고서 되레 더해진 듯싶다. 지난해 그믐께, 친구들 모임에서 새해 일출맞이는 일출봉에서라고 결정이 나고부터 열흘 내내 흥분이 가시지 않았었으니까. 하여, 아이들처럼 손꼽아 봤더니 제주 여행이 일곱 번째였는데도 그랬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오래전 여행에서 한라산을 처음 올랐을 당시 휘파람새의 휘파람이 내게 평생의 울림으로 안겨 주었으니 그럴 수밖에. 학계의 자료에 의하면 산허리에는 온대의 야산식물이 자라지만 한대 지역에서는 고산식물이, 그리고 산 밑에서 해변에 이르기까지는 열대성 식물 등 통틀어 25백여 종으로, 금강산의 8백여 종이나 일본 후지산의 1천여 종을 훨씬 능가한다. 하거늘, 그 각양각색의 무대에서 휘파람새를 비롯 130여 종의 조류와 50여 종의 곤충류가 철 따라 곳곳에서 목청껏 울려대는 휘파람의 하모니가 과연 신비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한라산은 보고 또 보아도 만날 때마다 늘 새롭고 황홀하고, 머무는 걸음걸음에 흥겨운 휘파람이 내게서도 절로 나오는 것이다.


좋은 아침이다. 햇살이 푸르러서 좋은 아침일까, 여행길이 넉넉하면 그 하루하루가 좋아서 '거울처럼 맑고 또 새들처럼 자유롭고자 하는 마음눈'이 좋이 열린다일행은 제주공항에서부터 한껏 자유로웠지만, 그들과 달리 내겐 가슴 가득 안기는 바닷바람에 제야의 기분이 오히려 차분해졌다. 평소 곧잘 즐기는 가까운 산행에서도 그렇지만, 먼 길 여행에서는 더 더욱 나만의 시간에서 멋을 즐기게 된다. 한 걸음 한 걸음에 잡념을 훌훌 털어내며 마음을 비우다 보면 어제보다 변화된 오늘의 나가 되어지는 멋이다. 한라산 환경이 어제오늘 다르고 관광 여건 또한 나날이 바뀌는 섬 여행인데, 그래서 내겐 다행히 이번에도 일출봉에 올라가서는 일행을 살며시 떼어 낼 수 있었다.

그랬다. 그러고는 혼자서 조심스레 우러르니 때마침 구름덩이가 심술을 부리는 듯했지만, 그래도 해님 앞에 겸허히 합장하자니 내 첫 시집에서 아끼던 한 구절이 절로 읊어지지 않던가.

샘내듯 구름덩이가 심술을 부려/ 수평선을 빨갛게 물들이진 못했지만/ 네 얼굴에서 나는 시름을 씻었지/ 네 타는 입술에 선뜻 입맞추었지

이윽고 일행과 함께 해안 도로를 타고 마라도로 내달았지만(이번 여행의 계획된 코스), 나는 좀 전 일출의 포옹을 가슴에서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내지르는 야호 소리 휘파람 소리도, 친구들의 이야기도 아랑곳없었다. 가슴에서 줄곧 새소리가 들리고, 싸한 향이 번지면서 무상무념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 참나를 찾아가는 꾸준한 노력이니까.

서귀포 칠십 리 해안을 막 벗어나자 멀리에 아른아른 마라도 하늘이 반긴다. 일행의 환성이 또 한차례 바닷바람을 가른다. 모슬포항에서 뱃길 따라 남쪽으로 11킬로,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 마라도.

섬의 섬에 다다르니 마치 한라산의 우람한 모습에 화답이라도 하듯 청옥빛 한바다에서 수직 절벽의 풍광명미(風光明媚)를 뽐내고 있었다. 등대를 바라보며 걷자니 자생의 선인장과 억새의 춤사위 또한 장관이다. 동남쪽 장군바위에 최남단기념비가 우뚝 서 있었다.

잠시 풀밭에 누워 올려다보는데 눈썹 위로 내 하늘한 조각이 파랗게 내려왔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문득 어머님 얼굴이 스쳤다. ‘자성본래불(自性本來佛)’이라시던 어머님의 살아생전 경계(警戒)가 그 어느 때보다 또렷이 떠올려졌다. “세상의 말에 끄달리지 마라, 뜻을 보아라, 그 뜻에 따라 행하라, 이를 거스르는 데서 집착과 욕심이 생긴다.


 햇살이 푸르러서 좋은 아침일까마음이 가난해서속이 비어서 아침이 푸를까보아서 미혹되지 않고가려서 조심스레 듣고所有無所有로 여겨서말을 삼가고, 안으로 기뻐하면그 속 허해 보이지만여행 길이 넉넉하고, 하루가 좋다그 아침은 햇살이 한결 푸르다 허술한 지붕에 비가 새듯이수양이 부족한 마음에 탐욕의 손길이 뻗친다 法句經 한 말씀이 새삼스러운 아침


그렇다. 내 풍경이 있는 마음 여행의 연작시 샛째 편 '좋은 아침' 그대로다. 햇살이 푸르고, 소유(소유)를 무소유(무소유)로 여겨지는 좋은 아침이다. 마음을 닦고자, 참나에 이르고자 나선 여행 길이 넉넉한 아침이다2박 3일의 계획된 나들이에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소금기 진한 바람 타고 만나는 한라산은 언제든 철을 가리지 않아서 좋다. 봄가을도 좋고, 한여름 한겨울의 아침은 더욱 멋있고. 다시 보고픈 일출봉의 아침 해, 다시 만나고픈 마라도의 낭만, 다시 듣고픈 새들의 휘파람 소리 소리들.


[푸른문학신문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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