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이태식(LEE TAE SIK)/책 만권을 읽으면

책 만권을 읽으면,수필가 이태식(LEE TAE SIK)

푸른문학 수필가 이태식(LEE TAE SIK)/책 만권을 읽으면

입력시간 : 2019-03-04 20:03:24 , 최종수정 : 2019-03-04 20:03:24, 푸른문학신문 기자


사람은 누구나 잘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모두가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삶을 좀 살아온 사람들에게 지금까진 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그렇게 썩 만족해하는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살아온 삶에 대해 뭔가 채워지지 않은 허탈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들은 왜 자기가 살아온 삶을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살아왔고 자기가 가진 것을 온전히 실현하지 못해 공허감 같은 것을 느껴 그런 것 같다. 자신을 알고 자신이 가진 것을 실현하는 방법 중 최고는 책 만권에 도전하는 것이다. 책 만권을 읽게 되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다. 출발은 책 만권부터다. 만권을 읽으면 아래와 같은 공식이 만들어져 그는 세상을 잘 살아가게 된다.

만권을 읽게 되면 나에 대해 잘 알게 되고 나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나와 남에 대한 자기 고유의 생각의 틀이 형성된다. 나에 대한 자부심과 성취감이 남에게도 도움이 됨을 알게 된다. 살아가면서 자신이 가진 것을 맘껏 펼치게 되어 그는 그 속에서 행복하다. 자신도 행복하고 남에게도 선한 영향을 주는 그는 결국 이 세상을 잘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잘 살기 위한 첫 단계는 책 만권에 도전하는 것이다. 어떻게 책 만권에 도달 할 수 있는지 하나씩 알아보자.

책 만권에 도달하려면 우선 책을 좋아하는 기질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누구는 아무리 책을 읽으라고 해도 읽지 않는다. 책이 좋은 것은 알지만 그게 잘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만 읽으라고 해도 기어이 책을 끼고 사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대개 조용한 성격으로 내성적인 성격, 감성이 여리어 상처 받기 쉽고 그런 까닭에 다른 사람과 사물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은 감수성 또한 예민하다. 대개의 사람들은 학교 가기 전이나 초등학교 때 부모가 읽으라고 해서 읽기는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면 상급학교 진학 때문에 책을 손에서 놓는다.

그러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중간에 책을 놓지 않는다. 설령 주변의 강요에 의해 잠시 놓는다 해도 계속 책에 대해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책으로 돌아온다. 그런 사람은 책 외에 달리 할 것도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과 딱 맞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라도 책과 영영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부모나 가까운 사람이 잘 관찰해서 그는 책과 잘 맞는 것 같다고 판단해 책과 가까이할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지 그렇지 못하면 평생 묻힐 수도 있다.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그렇게 되면 그는 잘 사는 사람이 아니다. 왜냐면 책과 만나지 못해 자신과 맞지 않는 것을 해서 행복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자기 것을 맘껏 펼칠 기회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잘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을 함으로써 자신이 즐겁고 자신의 재능을 주변에 펼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자신이 가진 것을 펼치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다.

 

둘째는, 책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 같다. 만권을 읽으려면 의지나 노력만으론 분명 한계가 있다. 양치질이나 주말 등산처럼 독서에도 습관을 붙여야 한다. 습관만 붙으면 그야말로 책읽기는 일사천리다. 그렇게 계속 습관을 유지하면 만권 읽기 달성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이런 습관에 책 읽기에 맞는 타고난 기질까지 갖추고 있다면 만권 읽기를 더 빨리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만권 읽기에 도달하려면 읽어서 얻어내는, 남이 모르는 자기만의 것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남이 모르는 자기만 아는 어떤 성취가 있어야 한다. 겉으로든 속으로든 얻는 것이 없으면 중간에 포기할지도 모른다. 분명 만권 가까이 도달하게 되면 책에서 얻어낸 자기만의 것이 있을 것이다. 상상력이나 통찰력, 일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이 생긴다. 인간이나 사물, 세상에 대한 자기만의 독특한 원리 같은 것을 찾아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그 숨어 있는 어떤 것은 너무나 소중하여 함부로 발설하지 않을 것이다. 쉬운 예로 돈 버는 방법을 책을 읽는 중에 알게 된다면 그것을 남에게 쉽게 발설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만 간직하고 있거나 가장 소중한 사람이나 자기와 생각이 같은 사람, 자신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람에게만 얘기해줄지도 모른다. 워럿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가 이런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모두 독서광이었고 돈 버는 원리를 책에서 얻었다고 하지 않는가?

설혹 그들이 외부에 밝혔다 해도 그것을 알아듣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 진리라는 것이 평범한 것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진리는 평범하지 않은가. 만약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평범한 진리를 제대로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만권에 도달한 사람은 책에서 얻은 진리가 소중함을 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냥 흘려버린다. 그것은 쉽게 얻었기 때문이고,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손때가 묻고 힘들여 얻은 것은 소중히 여기지만 로또처럼 운이 좋아 쉽게 얻은 것은 하찮게 여기는 법이다.

 

넷째는, 책을 읽는 자신을 자랑으로 여겨야 만권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기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늘 독서하는 자신에게 자부심을 가져야 만권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게 책을 많이 읽게 되면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하게 된다. 아마 책을 읽어가면서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그런 가운데 자신의 역할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게 되고 또 자식이나 뜻이 맞는 제자 같은 가까운 사람에게 그 진실을 알려주면서 그래도 자신은 좋은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남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책을 읽어감에 따라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그리고 남에 대한 선한 영향력도 증가하게 된다. 자신이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니 그는 행복하다. 속에선 뭔가 희망이 꿈틀거린다. 그는 이제 이 세상을 잘 살아가려 하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는지 궁리하게 된다.

 

다섯째는, 책을 읽는 속에서 기쁨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책을 읽는 것이 기쁨이 되면 지치지 않고 계속 읽게 되어 만권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서가 즐겁지 않으면 어떻게 만권에 도달하겠는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중간에 멈추지 않고 계속 한다. 역사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얻고 큰 성취를 이뤘다.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당할 수 없는 것이다. 독서 중에, 독서의 진정한 즐거움을 안다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읽어나갈 것이고 드디어 책 만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게 너무 막연하고 어렴풋하여 남에게 물어본 적도 여러 번 있다. 이런 물음은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 같다. 삶의 방향이 생겨 그것을 향해 가기 때문에 한 눈을 팔지도 않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 사람들의 말에 잘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정한 대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책 만권을 읽은 후 나와 남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바뀌는지 알아보자.

 

먼저 나 자신에 대한 것에서 잘 사는 게 어떻게 사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 나는 책 만권을 읽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되었다. 전엔 말하지 못했다.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나를 중심으로 한 세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누가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책 만권에 도달하여 어렵지 않게 대답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책 만권으로 내가 얻은 소득 중 가장 큰 것이다. 전에 대답하지 못한 것은 지식으로만 접했지 내 언어로 표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진정 알고 자신이 가진 것으로 뭔가를 하려면 자신을 대면하고 생각을 깊이 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여 자기화하는 과정이 꼭 필요한 것 같다. 나는 그것에 지금도 힘쓰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 누가 나에게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이냐, 고 묻는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이 세상에서 온전히 펼치는 것이라고.

신은 이 세상에 나를 보냈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운으로 이 세상에 온 것이다. 내가 태어나려고 이 세상에 온 게 아니다.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 이 세상으로 떠밀려져 나왔다. 스스로 살아보겠다고 나온 게 아니다. 어머니가 만삭이 되어 나를 낳으려고 할 때 내가 밖으로 나가려고 한 것은 내 의지가 작용한 것이 아니다. 그냥 본능에 의한 것이다. 나는 수동적으로 이 세상으로 나왔을 뿐이다.

내가 원한 것도 아니고 수동적으로 나왔으니 사는 것도 수동적으로 살아야할까? 신은 나를 보내면서 너에게 이런 기질과 유전형질과 본성과 어떤 너만의 재능-잠재력을 포함해서-을 주어 세상 밖으로 내보내니 네가 그것을 잘 활용하여 살아가고 그곳에서 너만의 즐거움을 느끼며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가라고 나를 세상으로 보낸 것이다. 이 신이 나에게 준 이것-나만이 가진 것 혹은 나 자체-을 잘 활용한다면 나 자신도 즐겁고 이 사회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의 범위에서 분명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이 준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간다. 그래서 자신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불행에 빠지는 것 같다. 자신에게 준 신의 이 세상에서의 선물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게 중요하면서도 아니 중요하니까 아무나 찾을 수는 없는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은 평생을 노력해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 만권을 읽어내면 그것을 찾는 게 더 쉬울 것이다.

 

이번엔 내가 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알아보자. 아마도 상대의 관점을 인정하는 것일 것이다. 자신이 타인의 눈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가 자기만의 시각과 관점을 자기고 있다. 자신은 합리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기만의 편견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나만 정상이고 상식적이지 남은 다 비정상이라고 여긴다. 모든 평가와 판단 기준이 나인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인 것이다.)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 대해 언급하거나 글을 쓰면 벌써 자신의 입장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대상을 가만히 내벼려 두지 않고 거기에 자기의 입장을 집어넣고 그것을 상대에게 강요하기까지 한다.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어떤 것을 보고 그것에 대해 자기 느낌을 말하는 것은 이미 자기 편견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지켜보는 것이다. 존재 자체가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존재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이 보면 따뜻하고 착한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면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같은 것을 보았지만 다르게 본다.

말해지는 순간 나는 이미 타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격()이 높은 사람이다. 편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격이 높은 사람이다. 자기 입장에서만 대상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격이 낮은 사람이다. 존재 자체가 하나하나 의미가 있으므로 내버려 두고 지켜보는 사람이 더 격이 높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정리하면 나에게 있어 잘 사는 삶이란, 책을 통해 나 자신을 알고 나를 만들고 나와 남에 대해 열려 있으되 흔들리지 않는 생각을 갖고 자신이 가진 것을 실현하며 그 속에서 행복하고 남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는 삶이다. 이것의 출발은 역시 책 만권을 읽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푸른문학신문 편집국 지형열]


Copyrights ⓒ 푸른문학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푸른문학신문기자 뉴스보기